“빅, 뷰티풀 법안”에 채권시장이 흔들리는 이유

한동안 조용했던 미국 채권시장이 최근 갑작스럽게 긴장 상태에 빠졌다. 보통 주목받지 못하던 이 시장이 이번에는 워싱턴 정가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수요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실시한 20년 만기 국채 입찰은 시장의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재무부에 따르면, 이번 입찰의 수요는 지난 2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며, 투자자들은 예상보다 높은 수익률을 요구했다. 이는 다시 말해,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데 있어 더 많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한 셈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에 보내는 경고로 해석된다. 특히 트럼프가 추진한 ‘빅, 뷰티풀’ 세금 감면 법안이 미국 경제를 지나치게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신호다. 채권 투자자들은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더 높은 보상을 원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국채 매입을 꺼릴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 여파는 바로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이날 800포인트 넘게 급락했으며,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 경제로도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채권시장은 이미 불안한 상태였다. 최근 몇 주간 채권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수익률은 반대로 상승하는 추세였다. 지난주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관세를 대폭 낮추며 경기침체 우려를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은 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마트 등 대형 기업들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관세 인상에 따른 가격 전가를 예고했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도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미국 국채의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동시에 ‘미국 팔기(Sell America)’ 트렌드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데, 이는 주식, 달러, 채권 전반에 대한 외국인 투자 심리가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도 이러한 불안을 부추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채권시장을 ‘소심하다’고 표현했지만, CNN 보도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은 4월 2일 ‘해방의 날(Liberation Day)’ 무역 발표 이후 트럼프가 방향을 선회하도록 설득했다. 이에 따라 그는 50%에 달하던 보복관세를 일부 국가에 대해 일시 철회했다.
이제 다시 채권시장이 공화당을 압박할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 ‘빅, 뷰티풀 법안’을 수정하게 만들 만큼 충분한 압박이 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공화당 내 재정 보수주의자들은 의회예산국(CBO)의 보고서를 근거로 이 법안이 향후 10년간 미국의 국가부채를 4조 달러 이상 늘릴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총 부채는 이미 36조 달러를 넘어섰고, 이에 대한 이자만으로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올 회계연도에만 6840억 달러가 이자 지급에 쓰였으며, 이는 전체 연방 예산의 16%에 해당한다.
의회가 부채한도를 상향 조정하면 재무부는 다시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면, 이는 미국 정부의 부채 조달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킬 수 있다. 그 여파로 미래의 사회보장 프로그램, 예컨대 메디케이드와 같은 복지 예산이 삭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높아진 국채 수익률은 일반 국민의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주택담보대출,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 등 다양한 대출금리가 미국 국채 수익률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계 부담을 키우고, 세금 감면 효과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도 약화시킬 수 있다.